제 목 : 거룩한 낭비
본 문: 막 14 : 3-9
거룩한 낭비는 낭비가 아닙니다. 최근에는 국내 소비가 저조하여 경제가 어렵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부유층에서는 낭비와 과소비가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 여행을 하고 입국 할 때 가장 많이 세관에 적발되어 있는 품목을 고급 가방이라고 합니다. 가방 한 개에 300백 만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낭비와 과소비는 한국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것이고, 또한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기 때문에, 낭비와 과소비는 우리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이토록 낭비는 미덕이 아닙니다만, 그러나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소비는 미덕으로 둔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본문 (막14:3-9)의 이야기,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낭비하는 것이 모두가 악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인의 행위가 낭비(혹은 허비)라고 비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값진 향유를 허비하느냐고 분을 내었습니다. 이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 텐데 하고 그 여인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 여인의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라고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이 한 일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아름다운 일로 전해지고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어째서 그 여인의 한 일이 「거룩한 낭비」입니까? 무슨 근거와 무슨 이유로 거룩한 낭비인가? 왜 거룩한 낭비로 칭찬을 받고 찬양을 하는 것인가?
첫째로, 그 여인은 낭비(헌물, 헌신)의 대상을 택하는데 있어서 우선순위를 잘 정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가난한 사람들, 그 대상 중 누구 먼저이고, 나중인가를 잘 택한 것입니다. 7절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항상 함께 있을 자 와 꼭 떠나고 말 사람, 지금 아니면, 영영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 누구에게 우선해야 합니까? 이것은 상식입니다. 본문의 여인은 곧 자기 곁을 떠날 예수님을 택하여, 그렇게 값진 향유를 낭비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 여인은 기회의 우선순위를 잘 포착하였습니다. 기회는 우리에게 늘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 라도 도울 수 있지만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속에는 기회에 우선순위가 있음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아무 때나 도울 수 있지만, 예수님은 항상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아니면 영영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한번밖에 없는 기회를 그 여인은 포착한 것입니다. 우리는 봉사할 기회를 갖는 것이 축복입니다.
셋째로, 그 여인은 "있는 힘을 다하여"(8절) 주님께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6절) 그 여인은 최고의 가치, 가장 값진 것, 그리고 그녀의 전부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300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일년 동안 노동해서 번 돈의 값입니다. 일년 내내 번 돈, 전부를 주님께 드린 것 입니다. 그녀는 가장 값진 것, 그의 재산전부를 가장 귀한 분에게 드린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게 힘을 다하여,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헌신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주님도 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여인이 그렇게 자기재산 전부를 주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 여인이 그토록 거룩한 낭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여인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은 생명에서 다시 얻은 생명, 그 기쁨으로, 그 감격으로 거룩한 낭비로, 주님을 향한 거룩한 낭비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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