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고난을 통한 깨달음
본 문: 시 119 : 65-72
본문 시편 말씀에 보면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시인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다가 고난을 당하고 나서야 그 말씀을 지키게 되었고, 그 말씀의 귀중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난 당한 것이 유익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결과이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자기에게로 부르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무지를 깨는 망치의 역 활을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감겼던 영혼의 눈을 뜨게 만듭니다. 고난은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말씀을 되찾게 만들어 줍니다. 고난은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고난은 저주가 아닌 은총(恩寵)입니다.
먼저, 이 시인은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다는 말이 됩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좋은 대로 행동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욕망을 좇아 분주하게 살아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그의 뜻과는 무관하게 지내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대해 전혀 무지한 채 살았다는 뜻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도시로 나가서 방탕한 삶을 살았던 것과 같은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육체만의 삶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외면한 채 자기 욕심만을 추구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떠난 불의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례(律例)를 잊어버렸기에 그 삶은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삶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알지 못한 삶이기에 폭력적이었을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오묘(奧妙)하신 섭리를 알지 못하였기에 그의 삶은 파괴적이었을 것입니다.
2. 고난이 약입니다
이런 무지와 죄악을 깨우치는 최선책은 결국 고난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병은 우리 생활의 절제를 위해서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인간에게 병이 없었다면 얼마나 탐욕적인 존재가 되었을까요? 병은 인간을 절제하며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병을 앓고 난 사람은 자기 인생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백혈병을 치료받은 어느 여교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고 그러나 마침내 동생의 골수를 이식 받은 후 점차 회복되어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 끔찍한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배웠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사랑과 감사를 배운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고귀함을 배운 것입니다. 탕자를 치료한 것도 그가 돼지 우리에까지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던 극심한 고난이었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그는 아버지를 찾았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당한 고난을 생각하며 사랑을 회복합시다. 그래서 남과 북이 서로 사랑하고 동과 서가 서로 손잡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강물처럼 이 사회 속에 흐르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이 땅에 이룩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의를 이 땅에 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한 고난을 헛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아름다운 선물들을 되살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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